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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신보] 4대가 치과의사 90년 전통 맥 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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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 치의 가문’ 김미애 원장(3대)이 조부가 쓰던 유니트 체어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 사진은 조부 故 김종환 박사, 오른쪽은 부친 故 김해수 박사.

▲ 4대 치의 가문’ 김미애 원장(3대)이 조부가 쓰던 유니트 체어에서 포즈를 취했다. 왼쪽 사진은 조부 故 김종환 박사, 오른쪽은 부친 故 김해수 박사.
가업을 잇는 일은 숭고하다. 그것은 돈을 위해 복무하는 게 아니라, 대를 잇는 어떤 ‘얼’을 계승하는 일에 가깝기 때문이다. 특히 빠른 속도로 산업화를 이뤄낸 우리의 풍토에서 수십 년 간 지속해 가업을 이어가는 일은 드문 케이스다.

 


# ‘since 1928’ 로고 새겨

잠실에 위치한 K치과병원의 로고 밑에는 ‘since 1928’이라고 적혀 있다. 이 병원 김미애 원장은 최근 6·25 전쟁 등으로 묘연해졌던 조부의 경성제대 학적을 서울대 측으로부터 확인하고 ‘4대 치과의사 가문’의 자부심을 되새겼다.

김미애 원장의 병원 로비에는 눈에 띄는 유니트체어가 전시돼 있다. 1950년 경에 일본 치과상에서 제작한 것으로 조부인 故 김종환 박사가 환자 진료에 사용하던 체어다.

그리고 그 체어를 가운데 두고 조부와 부친의 사진이 걸려 있고, 그들이 쓰던 각종 치과용 기구가 ‘Dr. Kim’s Family Museum’이라는 이름으로 전시돼 있다.


“사실 할아버지는 사진으로 밖에 뵙지 못했어요. 조부님의 뿌리에 대해서 크게 인식하지 못해서 많은 유품을 버리는 실수까지 저질렀는데, 이제 아들을 치대에 보내고 내 뿌리에 대해서 명확히 인식하기 위해 유품을 모아서 작은 박물관을 꾸몄습니다.”


김미애 원장의 조부는 경성치전을 졸업(1933)한 후 미국 유학을 떠났다가 귀국, 1928년 북한 원산에 최초로 개원했다가 전쟁으로 월남, 대구, 서대문구 등지에서 오랫동안 환자를 돌봤다.

2대인 부친 故 김해수 박사는 서울치대를 졸업(1949)하고, 대구에서 오랫동안 개원하며 지역 회무에도 오랫동안 몸담았다. 3대 김미애 원장은 경희치대를 졸업했고, 4대가 되는 그의 아들은 현재 일본의 한 치대에서 공부하고 있다.


김미애 원장은 “아버지가 전한 할아버지의 모습은 ‘크고 담대한 장군’같은 이미지였다. 그 시대에 미국으로 홀연 유학을 떠나고, 돌아와 지역 사회에서도 신망 받는 분이었다는 게 아버지의 말씀”이라며 “그래서인지 나는 아버지로부터 치과의사가 되라는 요구를 받아본 적이 없었지만, 어릴 때부터 치과의사가 되고 싶었다. 치과의사의 DNA가 흘렀던 게 아닌가 싶다”고 말했다.


# 언청이 수술 등 봉사 전념

4대 치의 가문을 관통하는 철학은 뭘까. 김미애 원장은 ‘한 우물’에 대해서 강조했다.

김 원장은 “아버지는 늘 치과의사는 한 우물만 파야한다고 말씀하셨다. 당신도 선친처럼 치과의사로서 자부심을 갖고, 남는 시간에는 무의촌에서 언청이 수술 등 봉사에 전념하고, 유럽, 일본 학회에서 공부하는 등 치과의사로서의 소명을 다하기 위해 노력하셨다”고 말했다.

 

하지만 김 원장이 자신의 아들에게 하는 얘기는 조금 다르다. 그는 “아들에게는 진료실을 벗어나서 좀 더 넓고 글로벌하게 살기를 주문한다”며 “시대가 변했고 치과의사에게 요구되는 자질도 진료실에만 국한되는 게 아니다. 미국에서 공부한 아들을 일본에 유학시켰고, 가능하다면 중국에도 진출시키고 싶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김 원장은 “그때쯤이면 Dr. Kim 박물관도 꽤 규모가 커질 거 같아요”라며 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