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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의신보] 구인 구직 행진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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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업 20년이 넘어가는 나는 오늘도 구인구직 광고를 보며 나의 이상형 직원 Nancy를 찾아다닌다. 

 

환갑이 몇년 남지 않은 내가 그간 함께 일하고 헤어지고 한 직원의 수는 몇백명이 넘는데 나의 기억에 남는 직원은 몇 명이 안된다.

 

나의 선친께서는 대구에서 개업을 시작하셨고, 시골 친척의 의뢰를 받아 시골 학생들을 뽑아 치과에 근무를 시키며 1~2년은 우리 집에서 함께 생활을 하게 했었다. 당시 우리 형제만 해도 4녀 1남의 대식구인데… 간호사, 기공사 까지 한 집에서 생활했던 지라 10명이 넘는 자식과 직원들의 수발을 들어야하는 친정 엄마의 노고는 지금 생각해보면 엄청났을 터이다. 소탈한 나의 선친께서는 시골 학생들을 자식과 똑같이 공부시키고, 치과에 근무시키며 잘 가르쳐서 좋은 인재로 만들어 사회로 보내주었던지라, 시골 친지의 집에는 항상 대구치과로 취직을 부탁하는 사람들이 줄을 이었다고 한다. 심지어는 자식보다 직원들을 더 챙긴다는 친정엄마의 불평을 들으셨지만, 선친의 직원 사랑은 참으로 끔찍하셨다. 나의 초등학교 시절, 시골에서 온 간호사, 치과기공사 직원들을 언니, 오빠로 부르며 한 집에서 아침, 저녁을 같이 먹고, 밤에는 그들의 하루 병원 생활을 들으며, 환자얘기, 진료얘기, 병원 얘기 등등 조언 아닌 조언도 하고, 또 선친에게 보고도 하고, 열심히 그들의 대변자가 되어주었다. 이런 어릴적 나의 배경은 개업 후 나의 직원들을 이해하고 챙기는 데 많은 영향을 받았다.
 

나의 미국 치과대학 유학 시절, 1986년 미국 치과를 처음 갔을때 그 신선한 충격은 지금도 생생하다.
30대 젊은 치과의사의 코디네이터는 은발머리를 곱게 단장한 묵직한 중년 백인 할머니 Nancy… 나에게 병원 소개를 하면서 자기가 모시고 있는 원장을 바라보는 그 따뜻한 미소와 눈길은 너무나 큰 감동을 주었고, 당장이라도 그 병원에서 입을 벌리고 진료를 받고 싶을 정도로 완벽한 병원홍보 및 자기가 모시고 있는 원장님 마케팅을 하였다. 젊디 젊은 치과의사가 업무 지시를 할때 마다 “Yes, Doctor!”를 정중하게 대답하고, 절도있게 세련된 매너로 내가 그 병원에 있는 내내, 백인 코디네이터 할머니는 원장님 곁을 그림자처럼 따라다니며 모든 업무를 조용히, 완벽하게 해내는 것을 보고 나도 저런 직원의 보필을 받으며 일하면 참 편안하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개업하면서 무수히 많은 직원 면접을 할때마다 나의 이상형 백인 코디네이터 Nancy 얘기를 한다. 불행하게도 Nancy를 진심으로 이해하는 직원들은 참으로 드물었다.
 

직업의식도 없고, 자부심도 없고, 자기가 병원에서 얼마나 중요한 직원인지도 모르고, 여기 치과, 저기 치과를 기웃거리며, 월급 몇만원 더 준다는 직장으로 옮겨다니는 책임감 없는 직원들도 있으니 말이다.

나의 개업 첫 치과위생사는 지금 박사학위를 받아 치위생과 교수, 주임교수가 되어 있다. 결혼 후 퇴직하고 애 둘 낳고 잘 살고 있는 직원을 힘들게 설득하여 다시 일하게 하고, 방송통신대 다니게 하고, 내친 김에 박사학위를 받으라고 또 부추겨서, 박사학위 받게 하고, 몇번 추천서 써 주고 하여 신설 치위생과 교수가 된 날, 나는 너무 기뻐서 눈물이 났다. 내 자식이 박사학위를 받은 것 보다 더 기뻤다. 또 한 직원은 근무하면서 석사논문을 같이 쓰고, 시간 강사를 하면서 박사학위를 받아 교수가 되었다.

내가 미국 유학 끝내고 귀국한 1992년도 몇달 페이닥터 하던 시절 함께 근무하던 조무사 선생님은 지금도 나와 함께 근무하고 있다. 25년간 끈을 놓지 않고 귀한 인연으로 막내 여동생 처럼 나를 편안하게 지켜주고 있다.

이런 인재들은 나의 개업 인생에 큰 자부심이다. 결혼하고 퇴직하고 딸, 아들 낳고 찾아오는 직원들이 있기에 나는 아직도 건장하게 행복한 개업을 할 수 있는 것 같다.
 

개업이 점점 더 힘든 현실에 직원 한 사람 더 채용하는 것도 병원 경영에 큰 부담을 준다.
오죽 구인난에 힘들면 직원 없이 혼자 개원하는 치과가 생겼을까 공감이 간다. 유럽에서는 직원없이 혼자 개원하는 치과가 많다고 한다. 그래서 혼자 진료에 필요한 특수 셕션 기구가 있다고 해서 나도 주문을 할까 한다.
 

진심을 진심으로 받아들여 주는 직원들도 드물다. 제대로 가르쳐보려고 등짝을 때려가면서 가르쳐주고 면허 시험 떨어져도 일년 가르쳐서 시험 합격되고 나니 연봉 올려서 다른 직장으로 가는 직원도 있었다.

내 딸이라면 아주 정신차릴때까지 때려주고 싶다고 까지 하며 혼내면서 가르쳐도 보았다. 남자원장이었으면 못했을 터인데, 여자원장이라 직원들에게 편하게 큰언니, 엄마,  큰엄마 처럼 대해 주었다. 그래서 나의 별명은 “송파빅마마”이다.

오늘도 나는 면접을 하면서 묻는다 “Do you know Nancy? Will you be my Nancy?”


※ 이 글은 본지 편집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김미애  K치과병원 대표원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