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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버지!!
가슴 속 깊이 깊이 흥건히 고인 울음을 속절없이 토해내고 있는 오늘밤은 유난히 아버지를 향한 불효녀의 그리움의 회환이 아스라히 떠오르는 밤입니다.
아버지 떠나신지 어느듯 이십년 되어가고 차디 찬 북망산 어딘가에 자리잡고 계실 당신이 그리워 별도 달도 보이지 않는 오늘밤 같은 수많은 밤에 겨울을 지난 찬바람을 맞으며 목놓아 통곡하고 싶은 날이 많았습니다.
1996년 더위가 채 가시지 않은 초가을 날, 칠순 생일상을 받으신 한 달후, 홀연히 어머니와 4녀1남을 남겨두고, 우리들의 곁을 떠나신 그날, 죄 많은 셋째 딸은 장애인복지관에서 장애우들을 치료하다가 당신의 비보를 듣고 당신께서 누워계시던 병원까지 울며 달려갔던 그 한 시간이 지금도 생생합니다.
살아 생전 그토록 보고 싶어하셨던 할아버지 사진 옆에 당신의 사진을 걸어두고 항상 진료 틈틈이 책을 즐겨보시며 태우시던 그 담뱃대는 제가 고이고이 간직하여 당신께서 소중하게 간직하셨던 할아버지의 유니트체어와 엑스레이와 기구들과 함께 저의 작은 병원 로비앞에서 매일매일 저의 하루를 지켜보고 계십니다.
아버지!
지난 주에는 세종시 청사 보건복지부를 찾아가서 할아버지의 경성치전 졸업 학적부와 치과의사 면허번호를 내 눈으로 확인하던 날! 그 감격스러운 순간을 아버지와 함께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에 눈물이 앞을 가렸습니다. 경성치전 학적부에 있던 할아버지의 증명사진은 아버지께서 살아 생전 할아버지를 표현하셨던 과연 당당한 장군의 풍모를 그대로 보여주고 계셨습니다. 노랗게 빛바랜 학적부에 부리부리한 두 눈은 그 긴 세월을 지나온 지금에서야 살아 생전 만나지 못한 손녀딸을 똑바로 보고 계셨습니다.
아버지!
왜 그리 할아버지가 그리워, 그 많은 모든 것을 다 남겨두고 할아버지 곁으로 달려가셨는지 남겨진 저희들은 어떻게 하라고 그리도 급하게 저 세상으로 가셨는지, 그 어려운 모진 세월, 개성에서 걸어 걸어 서울로 내려오셔서 공부하시던 그 시절, 북에 남겨진 할머니, 어린 동생들이 그리워 죽기 전에 찾아보고 싶었던 개성도 못 가보고, 얼마나 고향 개성이 그리우셨으면 돌아가시기 한해 전 추운 겨울날 중국을 통해 북한 국경까지 다녀 오셨지요.
어릴 적 아버지의 엉덩이에 깊이 열십자의 흉터를 보고 어린 가슴에 너무 충격이었습니다. 총알이 깊이 박혀 제거한 후 생긴 흉터라고 설명해주시던 아버지의 큰 두눈에서 흐르던 눈물이 지금도 눈에 생생합니다.
어린 딸 넷, 십년 터울의 막내 아들, 어머니까지 온 가족이 아버지만을 바라보며 살았던 시절, 안방 전등이 꺼져 고친다고 의자 위에 딛고 올라가다가 잘못 발을 디뎌 굴러 허리를 심하게 다치셨지만 환자들이 기다린다고 아픈 허리를 복대로 꽁꽁 동여매고 병원으로 총총 출근하시던 우직하고도 당당하신 아버지의 든든한 뒷모습이 너무나 그립습니다.
개성에 남으신 할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중국을 통해 전해들으신 그 날밤, 밤새 통곡을 하시던 아버지의 그 울음 소리에 밤 잠을 못자고 숨 죽이며 아버지의 흐느낌을 들었습니다. 몇달 전 아버지와 같은 고향이며, 서울치대 동기동창 이셨던 고 김인철 박사님께서도 돌아가셨습니다. 김인철 박사님께서 경희치대 학장님으로 계실때 경희치대를 아버지께 추천을 해서 제가 입학을 하게 되었지요. 하늘나라에서 두 분이 만나서 어릴적 고향 얘기 많이 나누셨겠지요.
김 해수 중령
군번 207702
1950년 12월 12일 임관
1956년 8월 15일 중령으로 예편.
지난 주 아버지 사진을 정리하다가 발견한 군의관시절 사진 뒷면에 “8사단 통신부장 검인”라고 찍힌 직인을 발견하고 육군기록 정보단을 통해 찾아낸 아버지의 군의관 기록입니다.
국가를 위해 몸 바쳐 지켰지만, 이북에 두고 온 가족들을 찾으려고 백방으로 노력했건만 반으로 나누어진 조국의 현실은 이산가족으로 평생을 타향살이라는 고달픈 당신의 일생을 마감하게 했습니다(사진 1).
저도 할아버지, 아버지 뒤를 이어 한 평생 달려온 길, 항상 치과의사를 천직으로 알고, 어느 누구에게도 부끄럽지않게 한우물을 파야한다고 교육받으며 자랐으며 환자들을 대할때 마다 되새기고, 또 되새기며 살아가겠습니다(사진 2).
언젠가는 아버지의 고향인 개성을 내가 찾아가서 아버지의 평생의 한을 풀어드리리라…
개성군 송도면 만월정 321 -2 번지
아버지가 태어나신 곳…
할아버지, 할머니, 아버지가 함께 살던 곳…
하루빨리 마음편히 왕래할 수 있는 그날이 오기를 오늘도 두 손 모아 빌어봅니다(사진 3).
2015년 간밤에 내린 비에 벚꽂이 다 떨어진 4월 어느 봄날 셋째딸 소함 김미애.
김미애 치과의사